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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티(Haiti)와 나, 700일간의 기록#2
    나라방/캐리브와 아이티 2010. 1. 19. 15:46

    본 글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아이티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은 글입니다. 중간중간 추가 수정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초기 읽으신 분들은 다시한번 #1부터 읽기를 권합니다.

    #1 내용
    -1997년 처음 아이티에 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 되는게 하나도 없는 나라.


    델마와 백정빌 그리고 씨티소레이
    포르토프랭스는 아래로부터 씨티소레이라는 빈민지역과 델마를 거쳐 백정빌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나뉜다. 백정빌은 고급 하우스단지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하우스가 즐비하고 이상하게도 아랍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중동지역에서 실각한 왕자들이 큰 돈을 가지고 망명 비슷하게 와서 살고 있다고한다. 제일 아랫쪽은 씨티소레이 지역과 다운타운이 그 옆으로는 공항이 있었다.

    국가가 사라진 나라라고 불러야할까? 아이티의 치안이라는 것 그리고 경찰력이라는 것은 권위없는 가이드에 불과했다. 은행 앞에서 우두커니 장총을 들고 지키는 가이드와 경찰의 차이는 없는 것이라, 아이티경찰은 길가에 방치된 차 하나를 견인하지도 못한다. 이런 경찰력부재와 국가 부재인 사회에는 온세상의 범죄자들이 몰리게 마련이었다. 만약 구소련의 트로츠키가 아이티에 정착 해 살았더라면, 암살들이 찾아오기 너무 힘든 환경이라, 도끼로 난자당하는 비참한 암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정빌이라는 산 중턱 지역은 수없는 호화주택들이 늘어져있다. 밤이되어도 제네레이터(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가 드리워져있고, 고급레스토랑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누가 이곳을 가난한자들의 지옥이라하는가! 백정빌에는 매춘부까지도 이뻣다. 그리고 도미니카나 칠레 브라질 등지에서 온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넘쳐낫다. 한국은 돈이 있으면 살기좋다는 자조가 있지만, 진정한 부자들의 천국은 백정빌이었다. 이곳은 국가의 힘도 닿지 않는 세계였다.


    이 나라는 관광이 자원이자나?
    아이티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는 일본인 부부였다. 그들은 NGO일로 아이티에 머물면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아이티로 데려오고, 학교를 만들고, 일본 정부와 연계한 정책자금(섬나라 지원프로잭트 등)으로 재정을 꾸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조력이 있었기때문에, 비교적 아이티의 상부 인사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했고, 알량한 요트사업도 지속할 수 있었다. 아이티는 천혜의 바다를 가진곳이므로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처럼 관광을 가지고 이 나라에 도움이되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생겼다. 포르토프랭스 앞바다에는 '라고나'라는 큰 섬이 있었고, 라고나섬은 그 자체가 관광상품이었다. '냄비'라불리는 대형 조개와 랩스터같이 보이는 큰 새우가 유별난 식재료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인, 파나마인, 브라질인 등 NGO일을 하는 사람들과 고나이브 요팅을 가곤하는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고나이브에는 풍부한 자연과 해산물이 있었다. 사람의 손이 거의 닫지 않고 가끔 오가는 소형선박의 어부들만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이들에게는 관광이라는 자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용하지 못하고있엇다.

    요트일을 하다보니 아이티의 별천지들을 다닐 수 있었다. 소위 무인도로 버려져있는 섬들도 이전에는 사람이 산 흔적과, 정교하게 가꾸어진 공원 그리고 자갈로 가꾸어진 오솔길이 남아있는 무인도 방갈로가 도처에 남아있었다. 생각해보니 같은 섬인데도 도미니카 공화국은 캐리브의 해변과 태양을 유용하게 관광상품으로 가꾸어 팔고있는데, 아이티는 전혀 손을 대지도 못하는 것이다. 한 때의 꿈은 아이티의 고나이브같은 곳에서 먼 옛날 중세의 '자유도시'와같은 질서와 평화가 흐르는 관광도시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다.

    한때의 꿈이라고 하지만, 너무 아쉬운 꿈이었다. 아이티는 마이애미에서 2시간거리인 천혜의 입지와 관광을 살릴 수 있는 곳이었기때문이다.


    출근길에서 목없는 시체를 보다
    요트 정착지는 거주하고있는 델마를 따라 내려와 씨티솔레이 외곽을 거쳐 1번국도로 가야한다. 그런데 이 씨티솔레이지역이 우범지역이었다. 비록 외곽을 거쳐 들어가는 길이었지만, 매일 출근하면서 씨티솔레이를 지날때 느끼는 두려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다 어느날 아침 길가에 검붉은 물체를 하나 본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3개인가..그것은 목없이 길가에 방치된 시체였던 것이다. 목을 잘라 길에다 시체를 방치한다...그것은 어느 부두교의 마법사가 저지른 일 같았다. 생각해보니 아이티는 부두교의 원산지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요트정박지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한밤이 되면 정박지는 조그만 불빛조차 없기때문에 그야말로 암흑 자체가된다. 이런 암흑에서 '부두의 귀신'이 나를 잡아가 살갖을 벗겨 죽인다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낮이되면 눈을 뜨지 못할정도의 하얀 세계, 밤이되면 칠흑같은 어둠의 세계였다.

    한국에 있는 정다운 얼굴들이 떠올랏다. 나는 한겨울에도 숨박힐 듯이 더운 아이티에서 썩어가는 것이고 견디기힘든 공포와 마주하고 있었다.


    외사촌형을 부르다
    처음 아이티에 가서 너무 고생을 하다보니, 정신이 확깨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이곳에서 일다운 일을 하려면 혼자힘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외사촌형이 계셧는데 마침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외사촌형은 나보다 10년이상 연배가 차이나는 분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60년대 한국인으로서 그 연배분들이 가지는 보수성과, 강인함이 배어나오는 분이었다. 한국인들끼리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반면 한국인들의 그런꼴은 내가 싫어하는) 그의 성정으로 인해, 한국인이 없을 것같은 아이티에서 몇명의 한국인과 정기적인 모임도하고, 일본인NGO 멤버를 모아 라고나섬 요팅을 다녀오기도 하는등 나에게 많은 힘이되었다.

    처음 아이티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 창을 내려보니 쿠바도 보이고 아름다운 캐리브를 맘껏 볼 수 있었지..그러다 어느 섬 가까이 오니까 바닷물이 온통 황토로 뒤덥힌 곳이 나오는 거야...난 거기가 쟈메이카나 어디 다른 곳인줄 알았어..그런데 비행기가 자꾸 내려가는거야 그 황토빛으로 더러운 바다를 가진 섬으로..그때까지도 이곳은 아이티가 아니라 잠시 경유하는 곳일거야..어쩌고 생각했지머냐. 그리고 공항에 착륙하는데 진짜 더러운 판잣집들이 창가를 휙휙 스치더라구. 그떄 생각했지..아이고 내가 못올데를 왓구나.."

    그말이 맞는지도 몰랏다. 외사촌형이 오던날 라고나섬으로가던 어느 훼리선 하나가 뒤집혀 1000명가까이 실종이라는 CNN뉴스가 터져나왓기 때문이다. 열악한 아이티의 운송수단은 배하나에도 정원외 수많은 사람들이 승선을 해서 피난살이 열차위에까지 사람이 진을 치는 것과 똑같다. 그렇게 무더기로 곂쳐서 운행하던 배가 나자빠지면 정말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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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에서 고통스런 기억만 잇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작은섬들이 무인도로 방치되어있고, 한눈에도 고급스럽게보이는 리조트가 주인없이 버려져(가끔 포르토프랭스에서 놀러오곤하는 흔적만..)있는 곳이 많았기때문에, 한적한 해변은 내 독차지가되어 즐길 수 있는 것! 요트 한 척만 있으면 이런 방갈로는 어디서든 무료이용(?)가능했고, 요트근처로 가약비슷한 보트를 탄 어부들이 모여들어 진귀한 해산물을 염가로 파는것!! 그리고 캐리브의 바닷가는 정말 아름다운 것!!(그런데 바닷물은 너무 짜다) 등이 잊혀지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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