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애인 펜싱 선수이자 '성화 영웅'인 진징(金
晶)은 평생 씻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루 사이에 영웅에서 매국노로 추락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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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애인 펜싱 선수이자 '성화 영웅'인 진징(金
晶)은 21일 오후 집을 나가 다음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상하이(上海) 북쪽의 한 작은 동네에 있는 진 선수의 집은 22일
그의 아버지만이 홀로 지키고 있었다. 진 선수는 평생 씻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루 사이에 영웅에서 매국노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진 선수는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휠체어에 의지해 성화를 봉송하던 도중 티베트 시위 유혈 진압 사태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급습을 받으면서도 온몸으로 성화를 지키는 장면이 공개돼 중국 내 영웅으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21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국정신은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프랑스 계열의 까르푸 불매운동에 반대한 것이 알려지면서 일부 누리꾼들에 의해 매국노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인터넷은 하루 사이에 그를 반역자로 매도했다.
지금 중국 인터넷에는 '매국노 인육사냥' 광풍이 불고 있다. 중화 대륙의 쇼비니즘과 빗나간 애국주의로 무장한 젊은 누리꾼들이 매국노와 반역자들을 찾아 인민재판을 벌이고 '처단'하는 광란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처단의 양대 기준은 티베트 사태를 보는 시각과 베이징(北京)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태도다. 한마디로 티베트 시위를 비난하면 애국, 옹호하면 매국이다. 또 베이징올림픽을 지지하면 선이며 비판하면 악으로 분류된다.
티베트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의 듀크대에서 일어난 친·반중 시위의 중재자로 나섰다가 같은 중국인들로부터 반역자로 낙인 찍힌 유학생
왕첸위안(王千源)도 인터넷 매국노 인육사냥의 희생양이다. 티베트 시위를 비판하는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터넷상에서 반역자로
몰려 자신의 사진과 고향 주소, 학력, 부모 이름, 신분증 번호까지 모두 까발려졌다. 그는 21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기피인물'이므로 중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의 처지를 밝혔다.
중국 최대 토론 사이트 톈야(天涯)나 최대 검색 사이트 바이두(百度) 등에서는 반역자를 심판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성화 봉송을 방해하는 티베트인, 혹은 티베트 사태에 온정적인 중국인들까지 모두 검색의 대상이 된다. 한
번 대상으로 찍히면 증오심으로 무장한 누리꾼들의 조직적 공격을 받는다. 파리 시위에 참여한 티베트인을 찾아내자는 한 중국인
대학생의 제안에는 수천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베이징대의 한 심리학 교수는 "지금 중국 인터넷에는 애국자 만들기와 매국노 찾아내기의 열풍이 불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및 성화 봉송 반대 시위로 급격히 형성된 대륙 내 배타적 민족주의와 뿌리 깊은 반(反)서양 정서, 그리고
다양성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적 획일성이 결합하면서 괴물처럼 자라났다"고 분석했다.